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문단 편집) === 2000년대 === [[2000년]] [[레바논]] [[아시안컵]] 8강전에서 한국과 또 만났다. 이번에는 [[이동국]]의 골로 2:1로 한국이 이겼는데, 당시 이란 관중들은 6:2라는 걸개로 한국을 도발했다.[* 당시 이란 기자들도 경기 전에 이걸 이야기하며 한국 기자들을 약올리다가 한국에게 0:5로 지던 건 잊었다고 반격당했지만 이란 기자들은 '대체 언제적 일이오?'라고 질문하여 1958년 대회라는 말을 듣고 피식거리며 거의 50년 전 이야기라고 어이없어했다. 이는 현재까지도 1950년의 터키전 1:6 패배와 더불어 이란 국대 역사상 최다 점수차 패배 타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현 2020년대에는 6:2 경기도 30년 가까이 지난 일이지만 2000년대에는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일이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때는 플레이오프에서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아일랜드]]를 만나 원정에서 2:0으로 패했고, 홈에서 1:0으로 승리를 거두는데 그쳐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대신 그 해 열린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홈 팀이자 월드컵 4강으로 기세등등한 한국을 [[승부차기]]에서 꺾고, 결승에서 일본을 물리쳐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 때 이란의 금메달 멤버 중 한 명이 바로 [[자바드 네쿠남]]이었다. 당시 이란 축구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알리 다에이]]가 2000년대 중반 전까지도 선두에서 활약했고, 이로 인해 다에이의 공백을 메우고 세대 교체를 감행할 시기를 놓쳤다는 것이다. 은퇴하기 전에는 후배 공격수들에게 자리를 안 내줘 세대교체 실패의 원인이 되었고 은퇴하고 나선 감독이 되어 [[알리 카리미]]와 같은 에이스들과 불화를 일으켜 성적 하락의 원인이 되었다. 더불어 이란축구협회에서 중요한 요직도 차지해 놓고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유니폼 스폰서도 알리 다에이가 직접 만든 회사의 유니폼을 쓰게 했으며 선수 선발에도 자신의 입김이 들어가지 않은 선수들은 철저히 배제했고 다른 이란 축구계 인사들이 한국에도 친숙한 [[이란계 미국인]]이자 당시 이란 리그를 제패했던 페르세폴리스 감독이었던 [[압신 고트비]]를 감독으로 올리자 자신이 직접 압력을 넣어 고트비를 자르고 다른 감독을 선임했다. 이로 인해 대표팀 성적이 급락하자 비난 여론이 폭발하면서 결국 [[알리 다에이]]가 물러나고 고트비가 복직했고, 협회와의 유연한 관계 조율로 나쁘지 않은 대표팀을 구성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